마법사의 약속/이벤트 스토리

애수의 해바라기의 에튀드 ~동쪽 나라 & 남쪽 나라~

oTaku_enen 2022. 1. 28. 21:35

의/오역 有, 개인 백업용이라 후레로 갈겼으니 자세한 건 게임 내 스토리를 읽어주세요.

오역 지적 달게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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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 : 이 세계에 와서, 입을 옷도 많이 늘었네……

아… 이 숄…

나는 엷은 노랑빛으로 물든 부드러운 촉감의 숄을 손에 들었다.

엷은 노랑빛의 정체는 해바라기다. 어떤, 해바라기밭의 경치를 생각하면서, 나는 눈을 감았다.

 

현자 : …그립네…

 

그것은, 동쪽의 마법사들과 처음으로 훈련에 갔던 일이었다…

 

 

토비카게리의 사건이 정리되어, 모두가 마법관에서 살기 시작하고 시간이 지나도…

동쪽 마법사의 선생님인 파우스트는 그다지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시노 : 어이, 파우스트. 우리에게 마법을 가르쳐줘. 다른 녀석들은 이미 훈련을 시작하고 있다고.

 

히스클리프 : 시노, 그만둬. 아직 자고 계실지도 모르고…

 

시노 : 이미 오후라고.

 

히스클리프 : 사는 곳이 바뀌어서, 그다지 잠을 자지 못하실지도 몰라.

…이전에 보았을 때도, 잠이 부족하신 것처럼 보였고…

선생님은 내 생명의 은인이야. 선생님과 마법관에서 지낼 수 있게 되어서, 나는 기쁘지만…

선생님은 귀찮았던 걸까…

 

 

파우스트 : ……

 

네로 : 안녕, 선생님. 점심식사 시간은 끝났어.

모두 이미 어디론가 갔고.

 

파우스트 : ……네로.

 

네로 : 사람들과 만나지 않기 위해, 시간을 엇갈리게 하는 건가.

 

파우스트 : 시끄러운 것은 좋아하지 않아.

아무것도 없다면 방으로 돌아갈 거야. 며칠 정도 먹지 않아도 괜찮…

 

네로 : 자, 가져가.

 

파우스트 : 뭐야, 이 바구니. 피크닉이라도 가는 건가.

 

네로 : 빵이랑, 치즈랑, 익힌 채소랑 키쉬가 들어있어. 와인은 덤.

 

파우스트 : ……

낮부터……

 

네로 : 마시고 자버려. 못 자고 있잖아. 다크서클이 심해.

아니면 잠들기 싫은 건가?

 

파우스트 : …어째서.

 

네로 : 한밤중에 포트에 커피를 만들어서 가져가고 있으니까.

 

파우스트 : 잘 보고 있군…

 

네로 : 예전에, 동료의 영양 관리를 했어서 버릇이 들었어.

입에 넣는 것으로 마음과 몸이 이뤄지니까.

 

파우스트 : 의외군.

 

네로 : 영양 관리가?

 

파우스트 : 동료라고 하는 것이. 사람과 어울리는 게 서툴다고 말했잖아.

 

네로 : …꽤 예전의 일이야.

저기, 선생님. 시노랑 히스가, 당신의 수업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던데.

 

파우스트 : 선생이라고 부르는 건 그만해줘.

네 쪽이 더 오래 살아왔잖아. 추측이지만…

 

네로 : 알았어, 파우스트.

그렇지만 가끔은 부르게 해줘. 나는 선생님한테 배워본 적이 없어.

 

파우스트 : 요리나 마법은? 스승에게 배우지 않았던 건가?

 

네로 : 당신이 처음이야. 당신은? 마법의 스승은…

 

파우스트 : 없어.

 

네로 : 아, 그래. 그럼 독학이 힘든 것도 알겠지.

가르쳐줘, 아이들한테.

 

파우스트 : 나는 교사로 적합하지 않아. 당신이 가르쳐줘.

 

네로 : 나? 나야말로 어울리지 않는데.

 

파우스트 : 어째서.

 

네로 : 상냥하지 않으니까.

 

파우스트 : 나도 상냥하지 않아. 점심도 함께 가지 않는 히키코모리다.

이거, 가져가도록 하지. 고마워.

 

네로 : 그래. 마음이 내키면, 같이 먹자고.

 

파우스트 : ……

네로. 한밤중에, 내 방에 온 적이 있나?

 

네로 : 아니… 없는데.

 

파우스트 : 그럼 됐어. 평생 오지 말아줘.

 

네로 : 뭐야 그게……

망령이랑 춤이라도 추고 있는 건가?

 

파우스트 : 비슷한 거야.

 

 

<거대한 재액>이 준 파우스트의 기묘한 상처는, 꿈이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흘러나온 꿈을 보고, 저주상인 파우스트가 한때 구국의 영웅이었던 과거를 알았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꿈이 흘러나오는 것이 두려워, 그다지 자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현자 : 꿈이 흘러나오지 않게, 결계를 치고 잠을 잔다고 말했지만 역시 신경이 쓰이겠지요…

 

레녹스 : …그렇네요.

 

남쪽의 마법사 레녹스는 이전, 파우스트의 종자였던 인물이다.

온화하고 견실한 인품으로, 주위로부터의 신뢰도 두텁다.

 

레녹스 : 이대로는 몸이 망가집니다…

제가 파우스트님에게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현자 : 네, 부탁할게요.

…동쪽 나라의 선생님역을 맡긴 것도, 부담되었을까요.

히스는 좋은 선생님이라고 말했었고,

파우스트도 본성이 상냥한 사람이니까 무심코 부탁해버렸는데.

 

상냥한 사람, 이라고 말하자 레녹스는 기쁜 듯 미소를 지었다.

 

레녹스 : 젊은 마법사들의 교육에 파우스트님은 적임자라고 생각합니다.

지도자로서도 우수한 분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지금의 파우스트님은, 무엇인가 역할이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현자 : 역할… 현자의 마법사인 역할이나, 동쪽 나라의 선생님의 역할인가요.

 

레녹스 : 예.

 

나는 곧바로 찬성할 수 없었다.

어려움을 겪은 온 사람에게, 역할을 넘긴다는 것은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이전, 오즈에게 들은 말이 있다. 역할에 짓눌리지 마라.

나의 생각을 본 것처럼, 레녹스는 부드럽게 속삭인다.

 

레녹스 : 괜찮습니다, 현자님.

저도 그분의 불행을 바라지 않습니다.

잠시 맡겨주시겠습니까.

 

 

파우스트 : …음…

(짧은 꿈을 꿨다…

결계는 유지되고 있는 것 같지만…

잠자는 동안에도 무사할까…

매개를 사용하고 있으니까,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

방의 밖에,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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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파우스트 : 레녹스…

 

레녹스 : 파우스트님.

 

파우스트 : 뭘 하고 있는거야, 여기서…

 

레녹스 : 망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상은 없었습니다.

그다지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계신 것 같아서.

며칠 동안 망을 보면서,

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으면 보고드리려고 했어요.

 

파우스트 : ……

네가 그런 것까지 할 필요는 없어.

 

레녹스 : 필요 없는 일을 해서 죄송합니다.

 

파우스트 :…그런 의미는…

……

걱정을 끼쳐서 미안하다.

…괜찮다면, 방에서 차라도.

 

레녹스 :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파우스트 : 꿈은 정말로, 나오고 있지 않았나?

 

레녹스 : 네. 문제없었습니다.

역시 파우스트님 이에요.

 

파우스트 : 아첨은 됐어.

 

 

<네로의 방>

 

네로 : 네, 네.

시노… 어쩐 일이야?

 

시노 : 출출해. 뭔가 먹을 게 없나?

 

네로 : 하하… 또?

기다려. 뭔가 만들어줄게.

 

시노 : 정말? 아싸!

 

 

시노 : 조금 전에, 파우스트의 방 앞에서,

커다란 남쪽의 마법사를 봤어.

분명, 레녹스…

 

네로 : 아아. 옛 지인이라던가.

지인이라고 할까, 종자라고 할까…

 

시노 : 히스와 나와 같은 관계인가.

불침번을 하고 있던 것 같던데.

나도 해보고 싶어.

자고 있는 히스의 방 앞에서 자지 않고 경호를 하는 거야.

분명 기분 좋겠지.

 

네로 : 기분 좋은 건가?

망보기는 지루하다고.

 

시노 : 자신의 충성심이 얼마나 높은지를 느낄 수 있어.

히스도 분명 기뻐할 거야.

자신에게는 믿음직한 가신이 있다고.

 

네로 : 그런 타입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말이지…

자, 여기서 먹고 가.

 

시노 : 맛있어 보여. 잘 먹겠습니다.

 

네로 : 어서 먹어.

 

시노 : 숲 지기를 했을 땐, 밤에 배가 고파지면 나무 열매나 과일을 먹었어.

이런 제대로 된 음식이 나오다니, 마법관은 최고야.

 

네로 : 하하. 됐으니까 얼른 먹어.

 

시노 : …오, 이거 맛있는데.

히스한테도 주고 싶어. 히스는 먹어본 적 있으려나?

 

네로 : 서민식이니까 어떠려나.

 

시노 : 히스의 몫도 만들어줘.

내일, 블랑셰 성에 돌아간대.

주인님께 소식을 받았다고.

 

네로 : 헤에, 그런가. 너도 같이 가는 거야?

 

시노 : 당연하지. 그 녀석이 있는 곳에는 내가 있어.

 

네로 : 하하…

너한텐 정말, 히스클리프가 소중한가 보네.

 

시노 : 주군이니까.

 

네로 : ……

너는 진심으로, 히스클리프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어.

그 녀석도 너를 소중히 하고 있고.

내가 보기엔, 어리고, 흐뭇한 주종의 인연이지만…

 

시노 : 뭘 말하고 싶은 거야?

 

네로 : ……

앞으로, 혹시…

같은 길을 걷지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할 거야?

 

시노 : ……

 

네로 : 지금은 둘이 함께 붙어있고,

둘이 있으면 무적인 것처럼 느껴지지.

불침번을 서고, 맛있는 걸 나눠 먹으면서,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어.

그런데, 만약…

언젠가, 그렇지 못하게 되면?

 

시노 : …그렇지 못한다는 건?

 

네로 : 뭐라고 말하면 될까…

…아냐, 나 이상한 걸 말했네.

아니야, 잊어줘…

 

시노 : 말해. 흐리지 마.

 

네로 : ……

불침번은 위험한 상황이니까 하는 거야.

히스클리프가 위험에 둘러싸여 있는 상황을,

너는 언제까지 기뻐할 수 있어?

맛있는 건 커녕, 이게 최후의 만찬인 것만 같은 식사를,

몇 번이나 나눌 수 있어?

명예나 승리와 맞바꿔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무리한 일들을 반복하는 히스클리프를 견딜 수 있어?

 

시노 : 누구의 이야기를 하는 거야?

히스는 무리한 일 같은 건 하지 않아.

 

네로 : ……

그럼, 다행이지만…

 

시노 : 무리하는 정도가 딱 좋아.

히스에게 위험이 닥친다면,

내가 지킬 뿐이야.

<거대한 재액>으로부터도. 어떤 적으로부터도.

 

네로 : …… 하하…

 

시노 : 뭐가 웃겨?

 

네로 : 열 번 정도까지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다가, 열한 번째 정도가 되면, 제정신이 아니게 돼.

20번째 이후로부터는, 그렇게 죽고 싶으면 내가 죽여주겠다고 생각하게 돼.

 

시노 : ……

30번째부터는?

 

네로 : 함께 지낼 수는 없다고 깨닫게 되지.

 

 

<파우스트의 방>

 

파우스트 : 차면 괜찮나?

 

레녹스 : 제가 하겠습니다. 파우스트님은 앉아 계세요.

 

파우스트 : 내 방이야.

 

레녹스 : 하게 해주세요. 400년 동안, 꿈까지 꿔가면서 바라던 일입니다.

 

파우스트 : ……

…말도 없이 사라져서 미안했어.

 

레녹스 : 아뇨, 제가 부족했습니다.

 

파우스트 : 너는 나쁘지 않아.

 

레녹스 : 아뇨. 그 때, 당신을 구출하고 요양하면서 숨어 살던 오두막에서…

잠깐이라도, 마음 편하게 계셨더라면, 제 앞에서 말도 없이 사라지지 않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계속,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파우스트 : ……

 

레녹스 : 드세요. 아직 뜨겁습니다.

 

파우스트 : ……

혼자 있고 싶었어. 어떻게든.

 

레녹스 : 저는 혼자 두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아서…

그래도, 그게 당신을 몰아붙인 거겠죠.

……

저주상이라니…

 

파우스트 : 실망했겠지.

네가 계속해서 찾아다니던 남자의 정체는, 이런 거야.

 

레녹스 : 제 정체도 이런 겁니다.

원수도 갚지 못했습니다. 당신을 찾는 것에만 집중해서…

 

파우스트 : 너는 사람을 미워하는 게 적성에 맞지 않으니까.

 

레녹스 : …당신이야말로.

파우스트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알레…

 

파우스트 : 그 이름은 말하지 마.

 

레녹스 : ……

 

파우스트 : …너와 만나서 다행이야.

현자의 마법사가 되다니,

너에게는 또, 운이 없는 일이지만.

 

레녹스 : 저는 운명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파우스트 : 감사할 정도의 운명이 아냐.

앞선 전투에서 두 명이 돌이 되었어.

나는 정말, 지도자는 적성에 맞지 않아.

 

레녹스 : 그렇지 않습니다.

동쪽의 젊은 마법사들도, 현자님도 당신의 가르침을 기다리고 있어요.

 

파우스트 : 농담이 아냐…

믿고 따라와 준 사람들을,

나락의 바닥까지 끌고 간 내게 뭐가 가능하지?

내가 그 배신자와 인간들을 믿었던 탓에, 몇 명이 희생되었는지.

말해봐, 레녹스.

 

레녹스 : ……

 

파우스트 : 히스에게는 동정으로 조언을 했어.

단지 그것뿐이야.

선생은 내 역할이 아니야.

 

레녹스 : …저주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당신의 역할입니까?

 

파우스트 : 그래. 네가 알던 나는 이제 없어.

망보기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아도 돼.

 

레녹스 : ……

 

파우스트 : …나를 잊어버리고, 너는 네 인생을 소중하게 해.

너는 부디,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어.

 

레녹스 : 저도입니다, 파우스트님.

 

파우스트 :  …잘자, 레노.

 

레녹스 : 또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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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 : 점심밥, 맛있었어.
…그래도, 파우스트는 또 보이지 않았네.
아서랑 모두가 손을 써준 덕분에,
슬슬 마법사의 임무가 시작될 것 같은데…
파우스트가 마음을 터놓으려면 아직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레녹스는 말했지만…
동쪽의 마법사들은 괜찮으려나…

네로 : 현자씨.

현자 : 네로… 점심, 잘 먹었어요. 무척 맛있었습니다.

네로 : 그럼 다행이야. 그럼, 이거 전해주지 않을래? 우리 선생님한테.

현자 : 런치박스…
파우스트한테 전해주는 거라면, 네로가 가지고 가는 게 어떤가요?

네로 : 뒷정리를 해야해서 말이야.
미안하지만, 부탁할게.

현자 : ……알겠습니다.

네로의 걱정스러움과, 뭐라 할 수 없는 분위기를 느끼고, 나는 런치박스를 받았다.

현자 : (…동쪽의 마법사들은, 처세술이 서툴구나…
사람을 싫어하고, 혼자를 좋아하는 마법사.
그렇지만 모두, 성실하고 상냥하고,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있어
함께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쉽게는 안 되는 걸까…)

떠나는 네로의 모습을 보며, 작은 한숨을 내쉰다.
그러면, 사라졌던 네로가 돌아온다.

네로 : 역시, 내가 전해줄게.

현자 : 정말인가요?

어리둥절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네로는 머리를 긁적였다.

네로 : 뭐…
바쁜 당신한테 맡기는 것도 좀 그래. 왠지 치사한 것 같고.

현자 : 네로도 바쁘잖아요.
그런 와중에, 도시락을 만들어주었죠.
상냥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미소를 지으며 네로를 올려다본다.
네로는 당황한 후, 곤란한 듯이 눈썹을 내리고 웃었다.

네로 : 가식 없이 그런 식으로 말해버리면…
당신에게 떠맡기려고 했었는데.

현자 : 도시락을 전하러 가는 걸요?

네로 : 대화를 잘 할 수 없는 녀석이랑, 이야기 하러 가는 걸.

나는 깜짝 놀랐다. 그때, 사람의 인기척이 나서 뒤돌아보았다.
거기엔 파우스트가 있었다.

현자 : 파우스트…

파우스트 :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잖아.
나도 산책 정도는 한다고.

서먹하게 얘기하면서, 파우스트는 흘끗 네로를 쳐다본다.

파우스트 : 또 점심을 전달받는 것도 미안하고.
젊은 마법사들을 제쳐놓고, 나만 특별취급 받는 건…

파우스트의 눈빛에는 반성과, 약간의 친밀감 담겨있다.
네로는 한숨을 돌리고, 농담처럼 웃는다.

네로 : 확실히 어른스럽지 않을지도.

파우스트 : …시끄럽네.
이전의 키쉬, 맛있었어. …점심 식사는 아직 남아있나?

현자 : 파우스트, 이거…

파우스트 : 뭐야? …아.
이미 만들어버린 건가.

네로 : 신경 쓰지 마.
그렇지만, 뭐… 저기…
괜찮으면, 방이 아니라 식당에서 먹어.
식후에 맛있는 커피를 끓여줄 테니까.

런치박스를 들고, 파우스트는 웃었다.
그의 눈썹도 난처한 듯이 아래로 내려갔다.
그들의 웃음이 좋았다.
당연하다는 듯이 손을 잡는 건 불가능하지만…
살며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고, 탐색하고, 상대의 안에 자신의 거처를 확인하는 것 같은 웃는 얼굴이.

파우스트 : 그럼, 받도록 할까.

네로 : 아아.

대화를 하면서, 나와 네로는 식당에서 파우스트의 식사를 지켜보았다.
핵심을 찌르는 대화는 하지 않는다. 그러, 아무렇지도 않은 화제로 얘기를 하는 동안, 서로의 기질을 확인해간다.

네로 : 이거, 지금은 소스로 맛을 냈지만, 소금만 넣어도 맛있어.

파우스트 : 헤에. 그것도 먹어보고 싶군.

네로 : 단순한 맛을 좋아해?

파우스트 : 복잡하고 정성 가득한 소스도 좋아해. 스스로는 만들 수 없으니까.

현자 : 스스로 요리를 할 때는, 어떤 요리를 만드나요?

파우스트 : 요리사의 앞에서 말할 수 있을까 보냐.

네로 : 당신은 그럭저럭하는 편이잖아. 왠지 모르겠지만, 보면 알아. 
카인의 요리는 듣고 놀랐지만.

파우스트 : 어떻길래?

네로 : 전부 그냥 튀긴대. 야채도, 생선도, 버섯도.
조개만 토마토 수프로 만든다는 것 같아.

파우스트 : 하하. 호쾌하군. 카인 다워.

현자 : 튀김을 하다니 대단하네요.
저는 히스클리프와 함께 죽을 만들었어요.

네로 : 헤에. 들어본 적 없는걸.
나중에 가르쳐줘.

다정한 시간이었다.
네로는 너그러운 거동 속에, 파우스트를 지켜보는 기색이 역력했다.
파우스트도 신랄한 척을 하면서, 예의 있게 네로를 챙기고 있었다.
마법관에서 생활하는 것을, 누구보다 이 두 사람이 싫어했었다.
그때 서로가 했던 말이, 아직도 서로에게 꽂혀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정한 시간이었다.

시노 : 현자.

시노의 목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들었다.
블랑셰에서 돌아온 것 같았다. 시노와 히스클리프가 있었다.
히스클리프는 파우스트를 보고 놀람과 기쁨을 얼굴에 띄운다.

히스클리프 : 파우스트 선생님…

파우스트는 겸연쩍은 듯이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곧바로 웃는다.

파우스트 : 큰 짐이구나.
어디에 다녀오는 길인가?

히스클리프 : 블랑셰에 돌아갔었어요.
아버지의 지인으로부터, 이변의 조사를 부탁받아서…

현자 : 이변…?

히스클리프 : 네. 란즈베르크령의 영주님입니다.
저는 가본 적이 없지만, 동쪽 나라의 중앙 근처의 영지로…
해바라기밭의 식인마녀 비앙카의 전설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동요된 목소리가 낸 것은, 다른 사람이었다. 

레녹스 : 란즈베르크령의 비앙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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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녹스 : 란즈베르크령의 비앙카…?

레녹스다. 시노와 히스의 뒤에, 식에 온 남쪽 마법사들이 있었다.

미틸 : 안녕하세요, 현자님!

루틸 : 동쪽의 마법사들이 모여있다니, 드문 일이네요!

피가로 : 아아, 진짜네. 오랜만에 얼굴을 보네, 파우스트.

파우스트 : ……

파우스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놀란 채 있는 레녹스를 걱정스러운 듯 보고 있었다.

히스클리프 : 레녹스. 란즈베르크령의 식인 마녀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거야?

레녹스 : 식인 마녀라고 불리고 있는 건가.
란즈벨그의 해바라기밭에서 처형된 비앙카라면…

히스클리프 : …아마 그 사람일 거야.
400년 정도 전에 처형당했다고…

레녹스 : …그렇군. 틀림없네.

파우스트는 희미하게 숨을 삼키고, 레녹스에게 물었다.

파우스트 : …설마, 그 비앙카인가?
할머니와 부모, 여동생을 소중히 했던 머리를 땋은…

레녹스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파우스트는 말을 잃고 침묵한다.

현자 : 아는 사람인가요?

레녹스 : 네…
비앙카는 옛 지인입니다.
중앙의 마법사로, 저의 동료였습니다.

히스클리프 : 동료…?
자세하게 얘기해줄 수 있을까, 레녹스.
식인 마녀…
아니, 비앙카씨의 저주 탓에,
조용한 마을에서 폭동이 일어날 것 같다고 해.

 

<응접실>


란즈베르크령의 식인마녀…
비앙카라고 하는 여성에 대해, 레녹스는 우리에게 설명해주었다.

레녹스 : 비앙카는 성실하고 상냥하며,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꽃을 좋아하는 여성이었습니다.
당시 중앙의 나라는 분열되어 각지에서 세력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비앙카는 조그만 마을의 출신으로…
가족이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마녀인 자신이 선두에 서서 싸워 평화로운 나라를 손에 얻겠다고.
그렇게, 항상 말했습니다.

레녹스는 조용하게, 비앙카라고 불린 마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레녹스가 동료라고 부른다면, 파우스트나 피가로도 그녀의 지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눈을 내리깔고 깍지를 낀 채였고, 
피가로는 모르는 척을 하고 있었다.

루틸 :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상냥한 마녀였군요…
어째서, 식인 마녀가…

레녹스 : 우리는 인간과 손을 잡고 싸우고 있었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갈라서게 됐어.
어떤 자는 인간을 공격하고, 어떤 자는 쫓기고, 싸우고…
어떤 자는 모습을 감추고 도망치고…
마법사도, 마녀도 뿔뿔이 흩어졌어.
비앙카도 그 중 한 명이었고.
인간의 행동을 용서할 수 없었던 그녀는, 한탄하면서, 인간을 저주하고, 미워해서, 자신의 저주에 삼켜져 버렸어.
그녀의 소문을 듣고, 그 해바라기밭에서 재회했을 땐, 나를 몰라보는 것 같았어.

시노 : …자신의 저주에 삼켜진다.
그런 일이 있는건가.

눈썹을 찌푸리고, 시노가 파우스트에게 물어본다.
대답한 것은 피가로였다.

피가로 : 힘이 약한 마법사들은, 가끔.
힘이 강한 마법사라도, 그렇게 될 수도 있지만.

미틸 ; 어째서, 힘이 약하면 저주에 삼켜지는 건가요?

피가로 : 마법은 마음으로 사용하는 거야.
확실한 마음을 스스로 억제할 수 있어야만, 강한 마력을 사용할 수 있어.

히스클리프 : 약하면, 자신을 잃고 저주에 삼켜지는 건가?

피가로 : 그 말대로야.
뭐, 그러는 쪽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겠지.

시노 : 어째서.

피가로 : 자신을 잃는 게 편할 때도 있어.
절망 속에서도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 행복이라고는 할 수 없어.

피가로는 파우스트를 슬쩍 보았다.
파우스트가 입을 열기 전에, 레녹스가 잘라 말한다.

레녹스 : 행복한 일입니다. 적어도 주변 사람에게는.

피가로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으려나?
그래서, 비앙카는 어떻게 된 거야?

레녹스 : 제가 만났을 때는 이미, 비앙카의 처형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마력을 다 써버린 그녀는, 교수대에 올라 목에 밧줄을 매고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말리려고 했지만, 때를 놓쳐서…
무시무시할 정도로 무서운 미소를 머금고, 그녀는 매달려 돌이 되었습니다.

파우스트는 굳게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고통을 참는 듯이, 눈썹을 찌푸린다.

파우스트 : …그런가…

파우스트는 심각한 모습이었다.
슬픔이나 미움, 자괴나 자책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떠오르고 사라진다.
그 안에는 비참한 장면을 목격한 레녹스에 대한 걱정과 사과도 포함되어있는 것 같았다.
레녹스는 눈빛을 살피고, 부드럽게 고개를 젓는다.

레녹스 :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히스클리프, 네가 들은 이야기는?

히스클리프 : 란즈베르크 영주님의 정보는, <거대한 재액>이 가까워진 날부터, 기묘한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현자 : 기묘한 이변…?

히스클리프 : 네. 계절에 어긋난 해바라기가 피어나…
거기에, 그 해바라기밭 위에, 아무것도 없는 하늘에서, 교수형의 밧줄이 늘어져 흔들리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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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틸 : …읏…

 

무서운 이야기에, 미틸이 루틸의 팔에 달라붙는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나이인 시노가 아무렇지 않게 있는 것을 보고서,

부끄러운 듯 살짝 손을 뗀다.

 

시노 : 고작 줄이 흔들리는 것뿐이야.

그 외에 대단한 일은 일어나지 않아.

하지만, 영민들의 안색이 좋지 않다고 해.

식인 마녀의 해바라기밭을 불태우라고,

관리들에게 몰려들고, 폭동 직전인 모양이야.

 

히스클리프 : …해바라기밭에는, 비앙카씨의 돌이 묻혀있다고 합니다.

마법사의 돌은 고가품이지만, 소지한 사람에게는 불행이 일어났기 때문에,

해바라기 밭에 묻혔다는 것 같아서…

그 해바라기밭을 불태우는 것은,

오히려 저주가 강해지는 것이 아닌가 하고

영주님은 고민하시는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아버지에게 부탁해 저에게…

현자의 마법사로서의 임무는,

정식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고 전했는데요.

무슨 일이 있고 나서는 늦으니까,

빨리 대응해줄 수 있냐고.

 

피가로 : 아서의 모습을 보면, 정식적으로 의뢰를 받게 되려면

아직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아.

우리만으로 괜찮으면 손을 빌려줄게.

폭동이 일어나면 큰일이니까.

레노도 도울 거지?

 

레녹스 : 물론입니다.

 

루틸 : 히스클리프, 나도 힘을 보탤게요.

 

미틸 : 저, 저도요!

 

시노 : 그만둬. 겁먹고 있잖아.

 

미틸 : 겁먹지 않아요! 시노 씨는 유명한 안내인일지 모르지만…

저도, 훌륭한 남쪽의 마법사에요!

모두의 도움이 되겠습니다!

 

마음을 단단히 먹은 시노를 보며, 시노는 어깨를 으쓱했다.

 

시노 : 아무래도 좋아. 거치적거리지만 마.

 

히스클리프 : 어이, 시노!

고마워, 루틸.

미틸, 신경 쓰지 마.

 

시노 : 파우스트, 네로.

남쪽의 마법사까지 협력한다고 하고 있어.

너희들도 같이 갈거지?

 

네로 : 나는 뭐, 상관없어.

파우스트는 무리시키지마.

몸 상태가 안 좋아.

 

히스클리프 : …그런가요?

선생님…

 

네로의 말은, 파우스트의 상태를 배려한 그의 방편이었겠지.

그러나, 걱정 가득한 히스클리프의 눈빛을 받고,

파우스트는 고개를 저었다.

 

파우스트 : 아니, 이제 나았어. 괜찮아.

 

네로 : 파우스트…

 

파우스트 : 저주라면, 내 전문이야.

비앙카가 처형된 땅으로 가자.

히스클리프, 레녹스. 이야기를 들려줘서 고마워.

 

파우스트는 순서대로 레녹스와 히스클리프의 얼굴을 응시했다.

두 사람은 계속 파우스트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에 부응하듯이 각오를 다지고, 파우스트는 고개를 끄덕인다.

 

파우스트 : 괜찮아. 폭동이 일어나기 전에 진정시키자.

 

<식당>

 

파우스트 : ……

 

네로 : 잠이 안 오는 건가.

우유라도 데워줄까?

 

파우스트 : … 난 어린애가 아니야.

물을 마시러 온 것뿐이다.

 

네로 : 좋은 와인이 있어. 방으로 가져가서 마셔.

 

파우스트 : 내일 일어날 수 없게 되잖아.

 

네로 : 일어나지 못하면, 늦잠 자도 돼.

시노랑 히스클리프는 내가 데려갈 테니까.

당신은 히키코모리잖아.

방에 틀어박혀 있으면 돼. 자, 받아.

 

파우스트 : ……

고맙게 받아두겠지만, 오늘은 마시지 않아.

 

네로 : ……

 

파우스트 : 나중에, 둘이서 마시지.

 

네로 : 둘이서?

 

파우스트 : 그래. …거절해도 괜찮지만.

 

네로 : 아하하! 거절 같은 거 안 해.

설마, 당신이 권유할 줄은 몰랐어.

 

파우스트 : ……

여러 가지로 미안했어, 네로.

호의에 기대고, 신경쓰이게 해서.

비앙카… 식인 마녀는 아마도 오래된 지인이야.

그녀가 저주를 받아 마나석이 된 것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어.

무언가 일이 생길 때는 아이들을 지켜줘.

내가 저주에 먹히면,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쳐.

피가로가 나를 돌로 만들 거다.

 

네로 : ……

하하… 큰일이네.

 

파우스트 : 뭐가.

 

네로 : 당신도 목숨을 걸고 무리하는 기질인가.

정말, 나는 뽑기 운이 안 좋구나.

 

파우스트 : 그리고, 하나 말하는 걸 잊어버렸는데.

 

네로 : 이번엔 뭐야?

 

파우스트 : 너는 다정해, 네로.

걱정해줘서 고마워.

 

<복도>

 

피가로 : 파우스트.

 

파우스트 : 방 앞에 죽치고 있지 마.

너와 말할 생각은 없어. 돌아가.

 

피가로 : 《폿시데오》

 

파우스트 : ……!

내 방문을 어디다 뒀어!?

 

피가로 : 의지해도 괜찮아.

너한테는 괴로운 안건이잖아.

 

파우스트 : 나는 기억력이 좋아서 말이지.

옛날, 너를 의지한 결과, 어떻게 됐는지를 기억하고 있어.

 

피가로 : 버리지 않았어.

 

파우스트 : ……

 

피가로 : 네게는 행복과 승리가 약속되어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내가 필요 없겠지 하고.

네가 그런 일을 당하게 될 줄 알았다면,

결코 떠나지 않았을 거야.

믿어줘, 진짜야.

 

파우스트 : 지금의 나는 불행해 보이나?

 

피가로 : 뭐어, 비교적…

 

파우스트 : 불행한 나에게는, 네가 필요한 건가?

 

피가로 : ……

 

파우스트 : 유감이군. 나는 지금, 최고로 행복해.

인간들의 정체를 알고, 인간들을 저주하고 있어.

인간에게 속아 넘어가는 일은 이제 없어.

 

피가로 : 무리해서 악독하게 굴 건 없잖아.

어울리지 않아, 너는 청순파야.

 

파우스트 : 맘대로 단정 짓지 마. 이게 진짜 나야.

 

피가로 : 그럼, 나한테 침이라도 뱉어봐.

할 수 없겠지.

 

파우스트 : 단정 짓지 마! 기다려, 지금…

 

피가로 : ……

 

파우스트 : ……

 

피가로 : 봐, 할 수 없잖아…

 

파우스트 : 내버려 둬!

얼른 내 방의 문을 되돌려놔!

 

피가로 : 의지해도 돼. 이제 너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아.

약속해도 좋아.

 

파우스트 : ……

그렇게 말하는 데가 믿을 수 없어.

 

피가로 : ……

…방금 한 말, 꽤나 무거웠다고 생각하는데…

 

파우스트 : 너는 지금 남쪽의 마법사고,

나는 지금 동쪽의 마법사다.

너와 함께 사는 것은 내가 아니고,

나와 함께 사는 것도 네가 아니야.

 

피가로 : ……

 

파우스트 : 장수하는 운명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을 때,

함께 살아가자고 말해줘서 기뻤어.

네가 모습을 감춘 날 이전까지는 말이지.

어차피, 금방 질릴 거면서 간섭하지 마.

문을 돌려놔.

 

피가로 : ……알았어.

잘자, 파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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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앞>

 

동쪽의 마법사와 남쪽의 마법사는 함께 동쪽 나라의 란즈베르크령에 가기로 했다.

식인 마녀라고 불리는 비앙카와, 그녀의 저주…

출발은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여있다.

그래도, 클로에가 준비해준 늠름한 의상은 젊은 마법사들을 기쁘게 했다.

 

히스클리프 : 클로에는 대단하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어.

 

루틸 :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했더니,

군인의 제복 같은 옷을 만들어줬어.

 

시노 : 제각각 옷을 입고 있는 것보단,

무슨 일이 있었을 때 위압하기 쉬울 테니까.

잘 어울려, 히스.

 

히스클리프 : 됐어…

기쁘지만, 놀러 가는 게 아니니까.

 

파우스트 : 그 말대로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도착한 후에는, 내 말을 따르도록 해.

 

나는 파우스트를 슬쩍 보았다.

어제까지의 우울한 표정과는 다르게, 또렷한 눈을 하고 있다.

파우스트의 태도에 놀란 후, 시노가 히죽 웃었다.

 

시노 : 이제까지 교육은 땡땡이쳐놓고, 무슨 소리야.

나는 훈육에 손이 많이 가는 학생이라고.

 

파우스트 : 뭘 으스대고 있는 거야…

 

히스클리프 : 기쁜 거지, 시노.

파우스트 선생님의 수업, 계속 받고싶어했으니까.

 

이번엔 파우스트가 눈이 휘둥그레질 차례였다.

조금은 부끄러운 것처럼, 시노가 코로 흥, 하는 소리를 냈다.

 

시노 : 히스가 당신을 그렇게 칭찬하니까.

솜씨 좀 보려고.

 

네로 : 뭐, 좋잖아.

선생도 학생도, 서로 급제점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

 

네로가 웃고, 시노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웃음을 흘리며, 동쪽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천천히, 심호흡 하듯이,

그들의 공기가 점점 부드러워지는 것을 느낀다.

싹트기 시작한 인연이, 풀리는 일이 없도록…

기도하면서, 우리는 출발했다.

 

<해바라기 밭>

현자 : 여기가 처형장이 된 해바라기밭…

 

빠질 것만 같은 푸른 하늘 아래,

온통 해바라기가 피어나고 있었다.

평화 그 자체를 풍경으로 삼은듯한, 선명하고 명랑한 색채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하고 무섭다.

바람에 흔들리는 커다란 해바라기가,

사람의 얼굴처럼 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가만히, 아무 말 없이, 밭에서 나란히 흔들리고 있다.

 

미틸 : 잔뜩, 해바라기가 피어있어.

선명하고, 깨끗한 곳이네요. 피가로 선생님.

 

피가로 : 그렇네. 그래도, 무턱대고 행동하면 안 돼.

너희들은 저주에 면역이 없으니까.

 

시노 : 과보호군.

나하고 나이도 그다지 차이 나지 않잖아.

 

피가로 : 역전의 너와는 달라.

남쪽의 마법사는 원래, 저주는 특기 분야가 아니고.

 

시노 : 흥.

 

미틸 : …역전…

……좋겠다…

 

루틸 : 왜 그러니, 미틸?

 

미틸 :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레녹스 : 저기…

사람이 모여있는 것 같네요.

 

피가로 : 진짜다. 

싸우고 있는 것 같네.

 

마을 주민 : 영주님의 명령이라도, 가만히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이대로는, 땅이 모두 저주받을 거에요!

당신들도 봤잖아!

섬뜩하게, 흔들흔들 흔들리는, 처형대의 밧줄을……!

 

영주의 관리 : 진정해!

불을 지피면 더욱더, 섬뜩한 일이 발생할 수도 있어!

이제 곧, 영주님께서 부르신 현자의 마법사들이 오실 것이다!

그때까지…

 

마을 주민 : 마법사 따위 믿을 수 없어!

이대로는 식인 마녀가 되살아날 거야!

 

마법사따위, 하는 화난 외침에 루틸과 미틸이 희미하게 숨을 삼킨다.

당당하게 앞으로 나간 것은 시노였다.

금방이라도 폭동을 일으킬 것 같은 그들의 향해, 드높은 목소리로 외친다.

 

 

시노 : 말을 삼가라!

블랑셰가의 히스클리프 님이다. 영주의 요청으로 시찰하러 왔다.

 

마을 주민 : 블랑셰 가의… 하하.

 

시노의 기에 눌린 것처럼, 마을 사람들이 무릎을 꿇는다.

히스클리프는 다정하게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히스클리프 : 히스클리프다. 이변을 조사하고, 필요가 있으면 현자님과 함께 대처할 거야.

불안하겠지만 맡겨주길 바라.

여기서 일어난 이변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들을 말해주지 않겠어?

 

평온한 히스클리프의 목소리에, 침착함을 되찾은 마을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상황을 전했다.

 

마을 주민 : <거대한 재액>이 다가온 날부터, 이 해바라기밭 위에,

교수형의 밧줄이 늘어지게 됐습니다.

이 땅은 식인 마녀 비앙카의 전설이 있어요.

왕가의 군대가 와서 퇴치하기 전까지,

마녀 비앙카는 백 명의 아이를 채어 가서 먹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무서운 마녀가 살아나게 되면…

그 생각에 밤에 잠도 못 자고 있습니다.

마녀의 저주가 스며든 해바라기밭은,

신성한 불로 태워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영주의 관리 : 그런 것, 이제까지 이 마을에서 지내면서 한 번도 말한 적 없잖아.

환각을 본 것 가지고…

 

마을 주민 : 환각이 아냐!

진짜로 교수형의 밧줄이 흔들리고 있었어요.

믿어주세요, 히스클리프 님!

 

히스클리프 : 의심하지는 않아.

그 외에 목격한 것은…

 

시노 : ……!

히스, 저거…

 

히스클리프 : …에?

루틸 : …교수형의 밧줄…!

 

그 풍경의 불길함에, 숨을 쉬는 것을 잊는다.

아름다운 풍경화와 같은 해바라기밭 위에, 교수형의 밧줄이 매달려있다.

고침을 마시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교수형의 밧줄은 어디서 내려오고 있는지, 확실히는 보이지 않는다.

뭐라고는 말할 수 없는, 묶인 밧줄이,

여기에 오세요, 하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무섭다.

 

마을 주민 : 자, 보라고…!

식인 마녀의 저주다!

처형당한 비앙카가 되살아나는 거야!

 

시노 : 소란피우지 마. 이런 것, 내 낫으로 잘라버리겠어.

 

파우스트 : 그만둬.

 

마도구인 거대한 낫을 꺼내어 앞으로 나아가려던 시노를,

파우스트가 팔을 뻗어 제지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무거운 앞머리 아래에서

파우스트의 두 눈은, 불가사의한 강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방에서 나오지 않고, 우울한 듯 눈을 내리깔고 있던 그와는

마치 다른 사람 같다.

 

파우스트 : 함부로 접근하지 마라.

생각했던 것보다 저주가 강해

<거대한 재액>의 영향으로 폭주하고 있어.

 

마을 주민 : …읏, 역시…!

지금 당장, 해바라기밭을 불태우지 않으면!

 

파우스트 : 당황하지 마.

올바른 순서로 정화하지 않으면, 땅이 저주에 오염된다.

저주가 붙을 수 있어.

너희들도 이 땅엔 접근하지 마라.

이제 곧 해가 진다.

밤이 되면 저주의 힘은 더 강해지겠지.

내일 아침, 정화하도록 하지.

 

마을 주민 : 아…

당신이 정화해주는 건가요?

당신은 대체…

 

파우스트 : ……

내가 누구냐고…

 

히스클리프 : 파우스트 선생님. 우리의 마법 선생님이다. 뛰어난 마법사야.

 

파우스트 : …히스…

 

당혹감을 띄운 채, 파우스트가 히스클리프를 돌아본다.

그를 바라보는 히스의 눈동자는,

혼날 것을 무서워하면서도, 간절한 소원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히스클리프 : …거짓말은 하지 않았어요.

선생님은 제 목숨의 은인이에요.

 

큰 낫을 한쪽 팔에 안으며, 시노도 말을 얹는다.

 

시노 : 그럼, 나의 은인이기도 하지.

슬슬 인정해, 파우스트.

우리 동쪽의 마법사를 이끄는 것이 네 역할이잖아.

네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어.

 

네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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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의 말을 받아들이고, 파우스트는 각오를 정한 것처럼,

눈꺼풀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눈에 떠 있는 것은, 우울한 한탄도, 짜증도 아니다.

엄격함과 다정함을 간직한, 강한 빛이었다.

나는 레녹스의 말을 떠올렸다.

「지금의 파우스트님은, 무엇인가 역할이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무거운 역할은, 자신을 짓누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역할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신답게 일어설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른다.

눈앞의 파우스트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을 주민 : 마법사의 말 따위 믿을 수 있겠냐!

비앙카도 똑같은 마녀잖아!

해바라기밭을 불태워버려!

식인 마녀의 저주를 끝내버리는 거야!

 

파우스트 : 불태워서 재로 만든다고 해도,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아.

자신의 눈에 비치지 않게 됐을 뿐이지

왜곡도, 원망도, 부식도 이어져간다.

보이지 않는 것이야말로 무서운 거야.

이 마을을 지키기 위한 게 아닌가?

그게 아니라면, 눈에 보이는 공포로부터 도망가고 싶을 뿐인가.

 

마을 주민 : 아… 아니야…

우리는 정말 이 마을을…

 

파우스트 : 그렇다면 믿어라.

너희들은 이 공포를 이겨낼 수 있어.

우리는 그걸 돕기로 하지.

 

마을 주민 : 어… 어떻게 공포를 이겨내면 되는 건가요?

 

고함을 치던 마을 주민과는 다른 사람이 불안하게 묻는다.

 

파우스트 : 그녀를 위해 기도를 해줘.

슬픈 일이 그녀의 저주를 낳았어.

편안하게 잠들고 싶은 건 그녀의 쪽이다.

그녀를 되살리고 싶지 않다면,

그녀를 위해 기도를.

 

마을 주민 : …식인 마녀에게 기도를 하라고?

그런 일을 하면, 벌을 받게 될 거야!

블랑셰 가의 히스클리프님을 봐서, 내일 아침까지는 기다려주지!

그렇지만, 그때까지 해결되지 않는다면

우리의 손으로 해바라기밭을 불태워버리겠어!

 

파우스트 : 그렇게 해.

 

표정을 바꾸지 않고, 파우스트는 수긍한다.

어느샌가, 해바라기밭 위에서 흔들리던 교수형의 밧줄은 유령처럼 사라졌다.

 

 

그날 밤, 우리들은 영주가 마련해 준 빈집에서

하룻 밤을 보내게 되었다.

남쪽의 형제는, 마법사를 경계하는 마을 사람들의 태도에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그런 그들이 걱정되었는지,

네로는 식사를 준비하면서, 평소보다 더 친숙하게 말을 걸었다.

 

네로 : 미안해, 돕게 해서.

저녁을 준비해준다고 했는데,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거절해버렸어.

 

루틸 : 네로 씨의 밥은 맛있으니까,

여행지에서도 먹을 수 있어서 기뻐요.

이거, 이제 접시에 올려도 되나요?

 

네로 : 아아, 잠깐만. 이걸 위에 뿌려서…

 

루틸 : 이건 소금으로 볶은 해바라기 씨군요.

샐러드랑 같이 먹으면 맛있을 것 같아요!

 

네로 : 영주의 하인들이 준비해줬어.

자, 미틸도 먹어봐.

 

미틸 : 아… 감사합니다.

맛있어… 남쪽의 해바라기 씨보다 큰 것 같아요.

 

네로 : 동쪽 나라는 토양이 좋으니까.

똑같은 씨앗을 뿌려도, 땅이 다르면 땅의 성질에 맞춰서 형태가 바뀌어.

우리들 같네.

 

미틸 : 그러, 네요…

 

루틸 : 해바라기는 기름도 얻을 수 있고, 염색도 할 수 있어.

확실히 이 지역의 명산품이야.

이렇게 소중한 것을 주다니, 

상냥하게 대해줘서 기쁘네, 미틸.

 

미틸 : 네. 네로씨, 이거 더 먹고 싶어요.

바삭바삭하고, 기름도 달콤하고, 정말 맛있어요.

 

네로 : 오, 많이 먹어.

자, 현자님도. 손 내밀어봐.

 

현자 : 아… 감사합니다.

 

손바닥을 내밀자, 아직 열이 가시지 않은

따뜻한 한 줌의 해바라기 씨를 주었다.

손바닥에 입을 대고, 바삭바삭하고 턱을 움직인다.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먹는 나를 보고, 네로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네로 : 아하하. 다람쥐 같네.

 

동쪽의 마법사와 남쪽의 마법사들은, 선생님인 둘을 제외하고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선생님들은 내일을 위한 회의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배가 차자, 공기도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미틸은 어딘지 모르게, 시노의 모습을 엿보고 있다.

 

시노 : 뭐야.

 

미틸 : …읏, 아, 아뇨, 별로…

 

시노 : 흥.

이건 내 몫이니까 주지 않을 거야.

 

네로 : 딱히 빼앗지 않는다니까.

 

루틸 : 미틸, 배가 고픈 거야? 형의 걸 좀 줄까?

 

레녹스 : 내 것도, 괜찮다면…

 

현자 : 제 것도…

 

미틸 : 아, 아니에요! 그…

…시노씨는 언제부터, 숲 지기의 일을 하고 있었나요?

 

시노 : 글쎄. 잊어버렸어.

 

히스클리프 : 제대로 대답해…

미틸, 시노는 어린아이일 때부터, 블랑셰에서 일했어.

숲 지기를 하기 전에는 정원 일을 해주고 있었어.

 

미틸 : 어린아이일 때부터…

어른들은 화내지 않았나요?

 

시노 : 화를 왜 내?

 

미틸 : 어린애는 흉내 내지 마라, 거나.

어린이 된 다음에 해라, 거나…

 

시노 : 그런 얘기를 듣는 건가?

히스, 들어본 적 있어?

 

히스클리프 : 나는 딱히…

적극적인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시노 : 나는 들어본 적 없어.

그런 말을 지킨다면,

생활비는 누가 벌어.

 

레녹스 : 미틸. 시노는 부모가 없어.

훌륭하게 자신을 부양하고 있었어.

 

미틸 : …저도 없어요.

저희도, 다른 아이들보다 고생했지만 훌륭하게…

 

시노 : 고생자랑인가. 그만둬.

히스가 어색해 질테니까.

 

히스클리프 : 나는 운이 좋았으니까…

 

시노 : 후후.

 

루틸 : 모두들, 나름의 고생과 나름의 행복이 있는 거야.

그치요, 네로씨.

 

네로 : 뭐어 그렇지…

 

시노 : 무난한 대답이구나, 어이.

 

네로 : 시끄러워.

무난하게 살아왔다고.

 

레녹스 : 나도야.

 

네로 : 당신은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말이지.

 

레녹스 : 하하… 피차일반이야.

 

미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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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소하는 목소리에 섞여, 미틸이 미간을 찌푸리고 침묵하고 있다.

미틸은 시노를 의식하는 것 같았다.

시노도 그걸 느낀 모양이다.

두려워하지 않고, 그는 솔직하게 미틸에게 물었다.

 

시노 : 미틸.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건가?

 

미틸 : ……

 

히스클리프: 너, 너말야… 그보다 좀, 다른 말투 써도 되잖아.

 

시노 : 말투를 바꿔도, 좋고 싫고는 바뀌지 않아.

그게 아니라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미틸 : ……

남쪽의 마법사는 짐이라고.

 

시노 : 하? 누가 그렇게 말한 거야.

때려도 돼, 협력해주지.

 

히스클리프 : ……

아마, 네가 말했지…

 

시노 : 나?

 

미틸 : …말했어요.

그래도, 잊어버린 것 같으니까 저도 잊는 거로 할게요.

 

시노 : ……

 

답답한 것 처럼 시노를 훔쳐보던 미틸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바로 정면에서 시노를 바라본다.

도망치지 않는 소년의 눈빛은,

남쪽 나라의 대지와 같은 다정함과 강인함을 품고 있었다.

 

미틸 : 시노 씨에게 심한 말을 들었으니까 싫어하고 싶었는데…

싫어할 수 없었어요.

강하고, 혼자서도 여러 가지를 할 수 있고,

시노 씨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니까…

 

미틸의 말에, 시노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바로, 입꼬리를 올리고 웃었다.

기쁜 듯이, 아주 자랑스럽게.

언젠가부터, 미틸과 시노가 미소를 주고받고 있다.

 

미틸 : 이제부터, 친하게 지내주세요.

같이 마법사의 수행, 열심히 하고 싶어요.

 

루틸 : 장하네. 잘 말했어, 미틸.

 

시노 : 흐흥… 좋아.

 

 

히스클리프 : 좋아, 가 아니야. 자, 너도.

 

시노 : ……

짐이라고 말해서 미안해, 미틸.

 

미틸 : 에헤헤… 아니에요.

그런 말 듣지 않도록, 열심히 할게요!

 

레녹스 : 얘기가 잘 돼서 다행이야.

어른들도, 잘 대화로 풀고 있었으면 좋겠는데.

 

히스클리프 : 그러고 보니 지금, 선생님들끼리

작전 회의를 하고 계시죠.

…어떻게 될까, 내일…

 

네로 : ……

 

 

피가로 : 그걸로 된 거 아냐? 빨리 확실하게 끝낼 수 있다면, 나랑 네가 하는 편이 좋겠는데.

 

파우스트 : 아니. 위험은 수반되겠지만, 젊은 마법사들은

저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겠지.

 

피가로 : 선생님다운 의견이네.

 

파우스트 : ……

 

피가로 : 마실래? 내일의 성공을 기원하며.

 

파우스트 : 조심성이 없군.

 

피가로 : 레노랑 얘들도, 분명 마시고 있을 거야.

루틸은 대주가야. 네로는?

 

파우스트 : …몰라.

 

피가로 : 같이 마셔본 적 없는 건가.

 

파우스트 : 다음에, 마시자고 얘기했어.

 

 

피가로 : 그래? 다행이네. 자, 잔을 들어.

 

파우스트 : …… 내가 따를게.

 

피가로 : 피가로 님에게 술을 따르게 할 순 없어?

이상한 부분도, 성실한 그대로네. 너답지만 말이야.

 

파우스트 : …이전엔 말이 지나쳤어.

 

피가로 : 괜찮은데. 나는 항상 말이 지나치니까.

 

파우스트 : 너무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있어.

너를 모르겠어, 피가로. 진심인지, 장난인지…

 

피가로 : 나는 항상 진심이야.

그렇지만, 소원은 이뤄지지 않으니까

장난쳤던 걸로 하는 거야.

 

파우스트 : 뭘 위해서?

 

피가로 : 상처받지 않으니까.

네 곁을 떠난 이유도 마찬가지야.

너나 비앙카는 서투르지. 정면에서 상처를 받고, 세상을 저주하지.

그래도, 그런 아이들은 좋아해.

 

파우스트 : …내 무엇이, 너를 상처 줬다고 하는 거야.

진심으로 존경하고 존경했어.

 

피가로 : 네가 보기엔 그렇겠지.

뭐, 뭐라고 말해야 할까.

가치관의 차이라고나 할까.

 

파우스트 : 피가로.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대답해.

 

피가로 : ……

…내가 보기엔 이래. 오랜 삶을 살고, 이것저것 하고,

이것저것을 잃고, 떠돌듯이 살았어.

여러 가지를 줬고, 여러 가지를 빼앗아 왔어.

상냥하게도 했고, 끔찍한 일도 했어.

그렇지만, 애매한 상태로…

어느 날, 세상을 바꾸려는 의지의 젊은 마법사를 만나게 돼.

기뻤어. 이걸 위해서 살아왔구나 생각했어.

내가 아는 모든 걸 그에게 남기려고 했어.

그렇게, 함께 세상을 바꿔서, 함께 세상을 지켜보게 될 거라고.

인간과 마법사가 함께 사는 세계…

잘 모르겠지만, 왠지 나쁘지 않은 울림이었고.

 

파우스트 : 너… 남이 목숨을 걸고 한 일을, 울림이 좋다고…

 

피가로 : 그래도, 알게 됐어. 알렉이 죽어도, 너는 죽을 때까지 알렉을 잊지 못해.

나는 결국, 외톨이야. 그런 거 할 수 없어.

 

파우스트 : …하?

친구를 애도하지 말라는 건가…?

 

피가로 : 기가 막히네! 아직, 친구라고 말하는 거야?

너를 그런 꼴을 당하게 했는데…

 

파우스트 :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렇지만, 친구를 애도하는 건 당연해. 그게 뭐가 나빠.

 

피가로 : 너는 모를 거야.

인생의 깊이를 아무것도 모르니까.

 

파우스트 : 사백 년이나 살고 있다고!?

 

피가로 : 뭐가 사백 년이야. 영웅이 되고, 정 반대로 돌아서, 저주상을 하고 있는 것뿐이잖아.

나만큼 우여곡절을 겪어봐. 내 인생을 선으로 그린다면, 칠한 것처럼 새까매질 거야.

엉망진창인 까만 선이 곧게 뻗을 가능성이 있었어. 그게 너였던 거야.

잘 된다면, 나와 네가 중앙의 나라와 아서를 지켜볼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이 되었을 텐데…

 

파우스트 : 내가 나쁜 것처럼 말하지 마…

……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군…

 

피가로 : 한마디로 말하자면, 미련이야. 저주도 못 돼. 웃기지?

 

파우스트 : ……

 

피가로 : 하하… 너는 웃지 않지.

그러니까, 내 죽을 시기에 대한 것도 얘기한 거야.

분명, 비앙카도 구할 수 있을 거야.

힘내, 파우스트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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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 ……

 

네로 : 끝난 건가, 선생님.

 

파우스트 : 너희들…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시노 : 별로. 마도구를 손질하고 있었을 뿐이야.

 

히스클리프 : 맞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남쪽의 사람들은,

아까 같이 침실로 이동했어요.

 

파우스트 : …의식의 설명은 내일 한다. 걱정하지 말고 빨리 자도록 해.

 

시노 : 임무나 의식에 대해선 걱정 안 해.

저주를 건 것도, 네 지인이잖아.

그렇다면, 걱정은 없어.

 

파우스트 : …그럼, 왜 깨어있어.

 

네로 : ……

하하…

 

파우스트 : 뭐가 이상하지.

 

네로 : 아니, 아무것도 아냐.

배가 출출한 거지, 시노도. 히스클리프도.

그래서 자지 못한 거야.

만족할 수 없는 게 있으면, 누구라도 진정되지 않아.

굶주린 게 있으면, 마음도 싱숭생숭해져.

비록 오합지졸이라도 말이지.

 

파우스트 : 흥…

의리가 단단하네. 사람과 어울리는 걸 어색해하는 주제에.

 

시노 : 함께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어.

 

히스클리프 : 에? 

 

시노 : 네로가 말이야. 30번쯤 죽음을 맞을 위기에 처하면,

함께 있을 수 없는 녀석이란 걸 깨닫는다고.

 

네로 : …아아, 뭐.

 

시노 : 나는 백번 죽을 위기에 처해도, 히스의 옆에 있는다.

히스에게도 우는소리는 하게 하지 않아.

피투성이가 된 내 모습도 익숙해지도록 해주지.

우리의 미래와 자유를 위해서.

 

히스클리프 : ……

 

네로 : 귀축…

 

파우스트 : 너희는, 대체 누가 주군인지 모르겠군…

 

시노 : 파우스트. 네로.

 

파우스트 & 네로 : ……

 

시노 : 저 달을 무릎 꿇게 하고, 내 신발 바닥으로 짓밟는 날까지, 너희가 필요해.

함께 있을 수 없는 녀석이라고 해도, 함께 해내자.

 

네로 : …하하. 그러네.

네가 말하는 대로야. 이 문장이 있는 한…

 

히스클리프 : …시노의 의견, 전부 찬성할 수는 없지만…

같이 열심히 해요.

우리에게 마법을 알려주세요, 파우스트 선생님.

 

파우스트 : ……

날이 밝으면.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정성 들여 협의하고 사전준비를 해서,

우리는 해바라기밭으로 향했다.

사전준비는 신기했다. 향유를 머리꼭대기에 늘어뜨리거나,

스-스-거리는 나뭇잎을 입에 넣거나.

모든 걸 끝내고 해바라기밭에 다다르자,

이미 사람들이 모여있다.

두려움에 덜덜 떨며, 기도하듯이, 혹은 의심스러워 하며,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파우스트 : 그러면, 가르친 대로.

 

시노 : 알았어.

 

시노가 짐 속에서, 붉은 흙으로 된 네모난 덩어리를 꺼냈다.

 

시노 : 《멧차·스디파스》

 

그가 주문을 외우자, 붉은 흙덩어리는 붉은 가루가 되어 하늘로 날아 올라간다.

날아오른 붉은 가루는, 새파란 하늘에 빙글빙글 선을 그리며, 소용돌이가 되어간다.

 

히스클리프 : 《렙세바이브루프·스노스》

 

히스클리프도 똑같이, 붉은 흙덩어리를 꺼내 들고, 주문을 외운다.

그의 손에서 날아오르는 붉은 가루도, 노란 해바라기 꽃잎 위에서

시노의 붉은 가루와 합쳐진다.

이윽고, 사르르 날아간 붉은 흙은 광활한 해바라기밭을 둘러싸는 거대한 붉은 원이 되었다.

 

네로 : 《아도노디스·옴니스》

 

주문을 외우며, 네로가 말린 향초를 던진다.

그것들은 청량감이 느껴지는 냄새를 풍기며,

빨려들어가는 것처럼, 붉은 가루의 선 위로 떨어진다.

떨어지자마자, 작은 불똥을 튀며 불탄다.

마을 주민들은 함성을 질렀다.

교수대의 밧줄이 나타난다.

이리와, 이리와, 하고 손짓하듯이 흔들린다.

어쩌면, 어째서, 어째서, 하고 누군가의 어깨를 잡고 흔드는 것처럼.

 

현자 : (식인 마녀 비앙카…

그런 식으로 불리다니. 성실하고, 상냥하고, 가족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녀…

그런 사람이 어째서…)

 

레녹스 : 아키라님.

 

레녹스에게 이름을 부려, 나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내 마음을 꿰뚫어 본 것처럼, 조용히 속삭인다.

 

레녹스 : 저주받은 것에게, 정을 들이지 마세요.

저주를 인정하면, 저주에 오염됩니다.

 

 

레녹스는 앞으로 나와, 마도구인 열쇠를 꺼냈다.

교수형의 밧줄을 향해, 열쇠를 치켜든다.

 

레녹스 : 《포세타오·메유바》

 

피가로도 오브를 들었다.

 

피가로 : 《폿시디오》

 

루틸도 깃털 펜을, 루틸은 마법의 병을 들고, 똑같이 마법의 주문을 외운다.

 

루틸 : 《오르토닉·세토마오졔》

 

미틸 : 《오르토닉·세아르시스피르체》

 

묵직하게 공기가 움츠러든 기분이 들었다.

해바리밭 밖에 뿌려진 붉은 가루가 검은색으로 변해간다.

여자의 웃음소리가 났다.

 

파우스트가 마도구인 거울을 꺼낸다.

사악한 공기를 휩쓸듯이, 거울이 반짝인다.

 

파우스트 : 《사티루크나토·무르크리드》

 

여자의 웃음소리가 난다. 나도 모르는 새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붉은 가루는 새까맣게 되어있다.

여자의 웃음소리가 난다.

언제부턴가, 마을 주민들도 기도를 하고 있다.

그 웃음소리가, 너무나도 슬펐기 때문에.

교수형의 밧줄이 사라져간다. 그것과 맞바꾸면서, 이상한 것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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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검게 변해버린 해바라기.

마치, 얼굴을 이쪽으로 향해 망연하게 서 있는 사람의 모습 같다.

어째서, 이런 모습으로 있는 걸까.

 

레녹스 : ……비앙카……

 

레녹스가 희미하게 숨을 삼킨다.

커다란 바람이 불며, 해바라기가 흔들렸다.

파우스트가 검은 가루의 선을 넘는다.

 

네로 : 파우스트!

 

네로가 제지의 목소리를 내는 동안, 파우스트는 검은 해바라기를 껴안았다.

긴 시간 동안에, 떠나간 동지를 강하게 그러안듯이.

 

파우스트 : 《사티루크나토·무르크리드》

 

밝은 불빛에 싸여, 검은 해바라기는 먼지로 변했다.

그 후엔, 선명한 노란색의 해바라기와,

어디까지나 눈부신 푸른 하늘이 남았다.

비앙카의 저주는 정화되었고,

아름다운 해바라기밭에는 평화가 돌아왔다.

마을 주민들은 감사를 표하고,

우리에게 해바라기 씨앗과 해바라기로 염색된 숄을 주었다.

모두, 짧은 인사를 하고

란즈베르크령의 해바라기밭을 뒤로한다.

어딘가 외로운 끝이었다.

 

마법관의 탑을 나와, 마법관으로 돌아가려는 우리들을 파우스트가 멈춰 세웠다.

 

파우스트 : 기다려.

 

현자 : ……무슨 일인가요?

 

파우스트 : 잠깐이지만, 저주를 건드렸다.

저주를 주거공간으로 들여오지 않도록,

정화의식을 알려주지.

 

히스클리프 : 정화의 의식...

 

파우스트 : 그래. 각자 방에서 행하도록.

현자, 너도.

 

현자 : 알겠습니다……

 

긴장하면서 수긍한다.

뺨을 느슨하게 하면서, 네로가 쭈그리고 앉았다.

 

네로 : 파우스트 선생의 첫 수업인가.

 

파우스트 : 칠칠치 못하게 앉지 마.

 

시노 : 강한 공격 마법은?

 

파우스트 : 그건 다음에.

그 전에 시노에게는 인내심을 가르쳐주지.

 

루틸 : 정화의 의식……

저희도 같이 들어도 되나요?

 

파우스트 : 나는 상관없지만……

 

파우스트는 눈빛으로, 남쪽 나라의 선생님인 피가로에게 확인한다.

피가로는 웃으며 끄덕였다.

 

피가로 : 좋은 기회야. 루틸도, 미틸도 배워두면 좋아.

 

미틸 : 아싸!

 

레녹스 : 파우스트 님. 은제 냄비가 필요한가요?

 

파우스트 : 아니, 미리 안뜰에 준비해뒀어.

각자, 거기에 물을 길어오도록.

사실은, 폭풍우가 좋지만……

 

피가로 : 오즈에게 부탁하자.

 

우리는 안뜰에 모여서, 은색의 냄비를 안고, 검은 구름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

뚝뚝 내리기 시작한 비가 주룩주룩 세차게 쏟아진다.

번개가 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거센 비에 뺨을 씻어내면서

우리는 빗물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

그건 신기한 시간이었다.

조용하고, 말도 적고, 신성하고, 외롭고

그래도 어딘가 일체감이 있다.

같은 비를 맞으며, 같은 의식을 한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면, 창문과 문을 닫고 촛대에 불을 밝히고

은 냄비로 빗물을 끓이도록

입고 있었던 것은 다 벗어버리고,

냄비가 끓으면 증기를 쐬도록.

먼저, 혀에. 다음엔 눈꺼풀에. 그리고 손가락.

옷은 계속 입지 않은 채로, 얼굴부터 발까지 몸 전체에 증기를 쐰다.

빗물이 한 방울도 남지 않을 때까지,

한마디도 하면 안 돼.

다 끝나면, 창문과 문을 열고 증기를 밖으로 내보내고 바람을 맞는다.

이게 끝이야. 외웠어?

 

현자 : ……알았습니다. 저…… 실패하면, 무서운 일이 일어나나요…?

 

조심스럽게 묻는 내게, 빗속에서 파우스트는 웃었다.

 

파우스트 : 나는 저주상이야. 그때는, 내가 도와줄게.

 

방으로 돌아온 나는, 들은 대로 촛대용 작은 상자에 은 냄비를 놓고 불을 지폈다.

냄비의 빗물이 끓는 소리를 들으며 옷을 벗고, 나체가 된다.

욕실 외의 장소에서 벌거벗는 것은 이상한 기분이었다.

 

현자 : (모두 같은 일을, 자신의 방에서 하고있는 건가……)

 

그건 기묘한 일체감이다.

닫힌 방에서, 혼자.

그런데, 같이 옷을 벗고 역할을 마치고, 자신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하얀 증기가 솟아오르기를 기다리며 혀를 내밀었다.

눈꺼풀에 증기를 쪼이는 순간, 선명한 해바라기밭이 뇌리에 되살아난다.

거기서, 한 여자가 웃고 있었다.

눈물이 날 만큼 희망으로 가득 찬 천진난만한, 환한 미소로.

 

??? : 파우스트 님! 레녹스! 다음은 어디로 진군하나요?

저, 어디까지라도 따라가겠습니다. 모두와 함께!

 

들은 적이 없을 목소리가 들려와서, 어디론가 떠나간다.

바람에 나부끼는 그녀의 머리카락은,

해바라기색의 숄과 같이, 상냥한 연노랑 색을 하고 있었다.

 

 

현자 : ……그립네……

 

연노랑 색의 숄을 바라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짓고 있었다.

선물로 받은 것인데,

유품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좀처럼 몸에 두르지는 못하고 있었다.

오늘은 몸에 걸쳐볼까.

거울 앞에서 대보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울린다.

 

파우스트 : 나다.

 

파우스트였다. 드문 손님이라 놀라서, 급하게 문을 연다.

 

현자 : 네. 무슨 일인가요?

 

파우스트 : 네로가……

……

 

입을 열던 파우스트가, 내가 목에 두른 숄을 보고 말을 멈춘다.

미소만 지을 뿐으로,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의 목덜미에 손을 뻗어, 숄의 모양을 갖추어준다.

 

파우스트 : 네로가 과자를 구웠다는 것 같아.

너도 괜찮다면, 같이.

 

현자 : 와아, 부디!

파우스트가 권해주러 오다니, 드문 일이네요.

 

파우스트 : 가위바위보에서 졌어.

네가 시노와 히스에게 알려줬지.

 

현자 : 가위바위보, 기억해주었군요.

저랑도 해요. 참참참도 가르쳐줄게요.

 

파우스트 : 뭐야, 그거.

 

파우스트와 나란히 웃으며, 마법관의 식당에 향한다.

목덜미에 감긴 부드러운 연노랑 색의 숄은, 몹시 따뜻했다.